자료실2006. 12. 25
[청년의사] 사는 동네에 따라 평균수명이 다르다
사는 동네에 따라 평균수명이 다르다
병원비 때문에 신용불량자 전락…의료산업화가 건강불평등 가속화
서울 영등포 일대의 노숙자와 행려병자들에게 ‘슈바이처 박사’ 같은 존재로 통하는 요셉의원 선우경식 원장. 지난 1987년 개원한 요셉의원은 지금까지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수십만 명의 영세민 환자와 행려자, 노숙자, 외국인근로자들을 무료로 진료해온 곳으로 유명하다.
오랜 동안 요셉의원을 운영해온 선우 원장에게 지난 2004년 가을 무렵 찾아온 한 50대 환자는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50대의 그 환자는 병원비가 아까워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찢어진 얼굴 부위 상처를 스스로 꿰맸었다. 그에게 병원비는 마취도 없이 맨살을 꿰매는 고통보다 더 두려운 것이었다.
강남과 강북간 건강불평등 심화
우리 사회에 드리운 의료양극화의 그늘은 생각보다 짙다. 강남과 강북간 교육환경의 차이만큼 의료환경의 차이도 상당히 벌어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건강형평성학회가 지난 2000년부터 2004년까지 5년간 전국 234개 시·군·구의 사망등록자료를 토대로 실시한 ‘성연령 표준화 사망률’ 조사결과에 따르면 2000~2004년까지 5년 동안 인구 10만명당 성연령 표준화 사망자 수는 강북구가 2,334명, 강남구가 1,809명으로 약 23% 가량 격차가 벌어진다.
서초, 강남, 송파구 등 강남권은 2,000명대 안팎의 수준을 보인 반면 강북구를 비롯해 성북, 노원, 동대문구 등은 강북권은 평균 2,200명 이상의 비교적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조사 결과와 관련 울산의대 강영호 교수는 “만약 우리나라 시군구가 모두 서초구 수준의 사망률을 보였을 경우 지난 5년 동안 살릴 수 있었던 사망자수는 38만4,152명에 이를 것”이라며 “이는 2000~2004년간 우리나라 총 사망자수(123만9200명)의 31%에 해당하는 수치”라고 분석했다.
〈▲ 소득에 따른 미치료, 치료지연 비율〉
물론 이런 차이가 단순히 지역적 요인에 기인한 것은 아니다. 소득이나 학력수준과 같은 사회경제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 때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64세 서울시민 1만6,18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작성한 ‘만성질환 유병과 주관적 건강수준의 사회계층별 차이와 건강행태의 영향’이란 보고서가 이를 반증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교육수준과 소득수준, 직업계층별로 만성질환 유병률과 주관적 불건강인식률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대학 이상의 교육수준을 가진 인구의 만성질환 유병률은 남자 22.7%, 여자 24.6%에 불과했지만, 초등학교 이하에서는 남자 56.2%, 여자 68.9%로 남녀 각각 2.5배와 2.8배의 유병률 차이를 드러냈다. 대학 이상의 교육수준을 가진 인구의 주관적 불건강인식률은 남자 7.6%, 여자 11.5%였지만 초등학교 이하에서는 남자 32.5%, 여자 42.3%로 높은 유병수준을 보였다.
소득수준에 따른 만성질환 유병률도 크게 달랐다. 소득수준이 상위 20%에 속하는 가구 월소득 251만원 계층의 만성질환 유병률은 남자 26.8%, 여자 27.9%에 그친 반면 하위 20%에 속하는 월소득 100만원 이하 빈곤계층의 만성질환 유병률은 남자 35.1%, 여자 49.8%로 훨씬 더 높았다.
보고서는 “이같이 교육수준과 소득수준의 차이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사회계층에 따른 보건의료서비스와 건강증진서비스에 대한 구매력의 차이, 서비스 접근성의 차이, 지식과 건강관리 능력의 차이에 기인하는 것”으로 추측했다.
가난과 함께 질병도 ‘대물림’
의료양극화에 따른 건강불평등의 가장 큰 문제점은 세대를 이어 대물림된다는 것이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작성한 ‘아동 및 청소년의 건강수준 및 보건의식행태’라는 보고서를 보면 건강불평등이 자녀들에게 그대로 대물림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보고서는 복지부가 지난해 4월 6일부터 6월 21일까지 3개월간 전국의 아동 및 청소년 8,633명을 대상으로 이뤄진 ‘건강심층조사’를 바탕으로 작성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건강이 양호한 아동 및 청소년의 비율은 가구소득이 100만원 이하인 경우 69.5%에 불과했지만 101~200만원 76.6%, 201~300만원 79.4%, 301만원 이상 81.6% 등으로 가구소득이 높을수록 그 비율도 함께 증가했다.
월평균 가구소득에 따른 아동 및 청소년의 건강수준은 다양한 지표에서 차이를 보였다. 아동 및 청소년의 발달장애 유병률의 경우 소득 100만원 이하의 유병률은 2.2%로 301만원 이상인 가구의 1.0%보다 2.2배 더 높았다.
시력에도 차이가 난다. 지역 건강보험(6.3%)과 직장 건강보험(6.2%) 가입자의 시력문제 유병률은 거의 차이가 없었지만 의료급여 가입자 가구의 아동 및 청소년의 유병률(11.1%)과 비교하면 뚜렷한 차이를 드러냈다.
의료서비스가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미치료 혹은 치료지연을 경험한 비율도 극명한 대조를 보였다. 12~18세의 청소년 중 미치료 혹은 치료지연을 경험한 비율은 100만원 이하 12.6%, 101~200만원 7.4%, 201~300만원 5.6%, 301만원 이상 5.9% 등으로 조사됐다.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한 이유를 들여다보면 우리사회의 건강불평등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월소득 100만원 이하의 저소득층 아동 및 청소년의 경우 미치료 혹은 치료지연의 이유 가운데 ‘경제적인 문제(67.1%)’가 주요이었던 반면 300만원 이상 고소득층에서는 ‘경제적 문제(3.6%)’보다는 ‘학업(58.8%)’이 가장 큰 이유였다.
이같은 조사결과는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자식들의 건강마저 결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난의 대물림이 질병의 대물림으로 이어지고, 이런 악순환 구조가 고착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우려스러운 현상이다.
병원비 때문에 신용불량자로 전락
저소득층 가구의 상당수는 진료비로 인한 부채를 떠안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복지부가 지난해 발표한 ‘차상위계층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소비지출 가운데 보건의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9.3%로 전체가구 평균(4.4%)의 2배 이상인 것으로 파악됐다. 반면 사교육비는 3.3%로 전체가구 7.5%에 비해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결국 가난으로 인한 건강불평등과 교육불평등이 다시 ‘빈곤과 질병의 악순환’을 부르는 것이다.
부채가 있다고 응답한 차상위계층 가구 중에서 부채를 지게 된 이유를 보면 생활비 때문이라는 답변이 54.0%로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 의료비(11.9%), 교육비 (5.4%), 주거비(4.5%) 등의 순이었다. 가구주가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비율(52.3%)도 전체가구(23.7%)의 2배 이상에 달했다. 더욱 큰 문제는 차상위계층 가구에서 보험료와 의료비를 합한 지출액이 본인 소득의 10%를 넘었고, 73.2%는 의료비 지출이 가계에 부담된다고 응답했다는 점이다.
병원비 때문에 금융채무불이행자(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원이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2년 11월부터 2006년 7월까지 접수된 신용회복 지원 신청자 59만9,000명 중 금융채무를 이행하지 못한 이유가 병원비 때문이라는 응답자가 8.3%(10만2472건)에 달했다.
결국 이런 현상은 저소득층의 질병 미치료나 치료지연으로 이어져 병원을 악화시키고, 이로 인해 진료비 부담이 더욱 늘어나는 악순환으로 연결된다.
의료산업화 정책이 의료양극화 부추겨
참여정부는 공공의료 강화와 함께 의료산업화 정책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이에 따라 영리법인 병원 허용을 비롯해 민간의료보험 도입, 의료시장 개방 등의 다양한 정책을 검토, 추진해왔다.
참여정부가 추진해온 의료산업화 정책의 방향은 ▲의료기관에 대한 자본참여 활성화(영리병원 도입) ▲국민건강보험 급여체계의 개선,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 ▲의료시장 개방 대응 차원서 국내병원의 해외진출 지원 및 우수 외국병원의 국내 유치 ▲고령친화적인 요양서비스 확충 및 고령친화산업 육성 등을 핵심으로 꼽을 수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대통령 직속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를 통해 다양한 정책 방향을 검토 모색해 왔다. 그러나 이런 정책이 의료양극화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높다.
충북의대 이진석 교수는 “영리법인 병원이 일정한 규모를 넘어서는 수준으로 설립되거나, 그 영향이 전체 의료제도에 미칠 정도가 되면, 의료의 양극화 해소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며 “이는 의료비의 전반적인 인상으로 연결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외국의 사례를 보면 영리법인 병원의 의료비가 비영리법인 병원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서도 1990년대 말 민간 위탁된 지방공사의료원의 진료비 변화를 추적 관찰한 결과, 민간위탁 이후의 입원 1일당 의료비가 이전에 비해 2~3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진석 교수는 “의료비의 전반적 인상으로 인한 접근성 축소는 의료의 양적, 질적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며 “영리법인 병원 설립을 포함한 의료산업화정책이 의료의 양극화 해결방안 마련을 가로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민간의료보험 역시 의료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는 주요인으로 꼽힌다. 민간의료보험 도입 논의의 단초는 건강보험재정의 부족한 부분을 민간의료 부문에서 확충하자는 데 있다. 즉, 민간의료보험이라는 추가적인 재원을 활성화해 공공의료보장체계를 확대한다는 것이다.
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센터는 지난해 발간한 ‘의료의 산업화와 공공성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통해 “최근 들어 사회의 양극화가 더욱 심해지고 있는 형편이어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함에도, 오히려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는 이와는 정반대로 고소득층을 위주로 전개되는 정책이므로 이를 통해 확보되는 재원이 저소득층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분석했다.
보고서는 “민간의료보험의 도입 취지가 선택의 다양성을 높이는 것인데, 일부의 계층(주로 고소득층)에만 해당된다면 선택의 다양화라는 명분 아래 사회계층 간에 의료이용의 격차를 심화시켜 전체적으로는 비효율적인 구조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의료양극화, 대책은 없나
1980년, 영국에서 발표된 ‘블랙리포트’는 이 나라의 건강불평등 문제를 적나라하게 지적해 놓았다. 그러나 당시 보수당정부는 이를 금서로 규정하고 폐기처분했다. 보수당 정부는 ‘철의 여인’으로 불린 대처수상 이래 17년간 ‘건강불평등’의 존재 사실조자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1997년 토니 블레어 총리가 이끄는 노동당정부가 출범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블레어 정부는 출범 이후 곧바로 블랙리포트의 후속으로 ‘에치슨리포트’를 펴냈다. 이를 계기로 건강형평성의제를 노동당정책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에치슨리포트가 담아낸 핵심적인 3가지 의제는 ▲건강에 영향을 주는 모든 정책들은 그 정책들이 건강불평등에 가져올 영향을 평가해야 한다 ▲어린이가 있는 가정의 건강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소득불평등을 줄이고 가난한 가구들에 대한 생활수준을 향상시켜야 한다 등이다.
강원의대 예방의학교실 손미아 교수는 최근 열린 한국건강형평성학회 학술대회에서 “영국정책의 성과는 건강불평등에 타격을 가하기 위한 정책을 전 중앙부서의 핵심전략으로 세웠다는 것과 기존의 모든 체계를 활용해, 기존의 모든 사업을 건강불평등에 타격을 가하는 사업으로 방향전환 시켰다는 데 있다”고 평가했다. 손 교수는 “가장 핵심적인 점은 영국의 정책입안자들은 기존의 보건정책이 오히려 건강불평등을 심화시킬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감지하고 방향전환을 시도한 데 있다”고 강조했다.
영국의 상황에 빗대어 볼 때 우리나라에서 의료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첫걸음은 바로 건강불평등에 대한 위기감을 인식하는 것이다. 단 의료양극화 문제를 보건의료 분야에만 국한시켜 바라볼 때 문제 해결이 요원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부산의대 예방의학교실 윤태호 교수는 “우리사회는 아직도 건강이라는 개념을 보건의료서비스의 개념과 동일시하는 등 인식수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건강불평등을 보건의료분야의 문제로만 접근하게 되면 그 해결이 요원하며, 전 사회적인 노력을 통해 해결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 사회가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2006년 대한민국 의료 ‘극과 극’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에 위치한 시립동부병원. 200병상 규모의 이 병원은 노숙자와 행려병자, 의료보호 환자 등이 전체 환자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지난 12일 오후, 기자가 이 병원을 찾은 날에는 우연찮게도 전산시스템 장애가 발생해 외래진료가 거의 마비된 상태였다. 2002년 신축 건물로 옮겨와 내부시설과 외관은 여느 종합병원 못지않게 깔끔하지만 병원 내부는 어쩐지 스산한 느낌이었다.
“이곳에 오는 환자는 노숙자나 행려자 등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폐결핵 환자도 꽤 많은 편입니다.”
이 병원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는 이현주 씨의 말이다. 이 씨는 “2~3년 전부터 환자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며 “독거노인이나 장애인, 만성질환자가 전체 환자의 80%를 넘는다”고 말했다.
병원을 찾는 환자들의 사정이 이렇다보니 의료진도 치료에 상당히 애를 먹는다. 특히 알코올중독 환자들의 경우 입원해서도 술을 찾거나, 병실에서 흡연을 하다 강제퇴원 조치를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 씨는 “환자들의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다 보니 정신적으로 희망이 없다. 미래에 대한 계획을 갖기도 힘들고, 이 때문에 스스로 좌절하다보니 치료에 대한 의지도 그다지 높지 않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곳에서는 웬만한 치료가 거의 무료다. 다만 입원환자의 경우 하루 세끼 식사에 2,000~3,000원 정도의 본인부담금을 내야 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부담스러워하는 환자가 적지 않다.
이 씨는 “입원환자들 가운데 식대를 내기 힘들어 밤중에 몰래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병원을 빠져나가는 이들도 있다”며 “때로는 빚 때문에 채무자들이 병원까지 찾아와 독촉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수백만원대의 건강검진 서비스가 호황을 누리고 있다. 서울 강남에서도 교통의 요지에 위치한 서울대병원 강남건진센터. 지난 2003년 10월 최첨단 검사장비와 호텔 수준의 최고급 서비스로 무장한 채 화려하게 개원한 강남건진센터는 지난 10월부터 연간 회비 1,000만원인 건강회원권 제도(파트너스 프리미어 CEO 프로그램)를 도입했다.
강남센터가 도입한 이 검진 프로그램은 연회비만 1,000만원으로, 기업의 CEO나 임원 등을 대상으로 한 최고급 건강회원권 제도다. 강남센터는 이 프로그램 운영을 위해 상임주치의 6명, 간호사, 24시간 콜센터 운영인력 등 10여명의 인력을 투입해 회원들의 건강관리를 전담토록 했다. 지난 10월부터 운영에 들어간 이래 기업 임원과 배우자 등이 속속 회원으로 가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남건진센터는 이와 함께 숙박 건강진단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이 프로그램은 지방에서 올라온 검진자를 위해 서울에 위치한 리츠칼튼, 신라, 하얏트 등 유명호텔과 연계해 숙박 서비스를 제공한다.
신촌에 위치한 연세의료원 세브란스병원의 ‘200병동’. 여기에는 하루 병실료만 170여만원에 이르는 45평형 대형 특실이 운영된다. 특급호텔 수준의 인테리어와 조리실, DVD 오디오 시설, 개인 PC, 심지어 회의실과 거실까지 구비돼 있다.
김상기 기자
김상기 기자 bus19@docdocdoc.co.kr
사진·김선경 기자 photo@docdocdoc.co.
병원비 때문에 신용불량자 전락…의료산업화가 건강불평등 가속화
서울 영등포 일대의 노숙자와 행려병자들에게 ‘슈바이처 박사’ 같은 존재로 통하는 요셉의원 선우경식 원장. 지난 1987년 개원한 요셉의원은 지금까지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수십만 명의 영세민 환자와 행려자, 노숙자, 외국인근로자들을 무료로 진료해온 곳으로 유명하다.
오랜 동안 요셉의원을 운영해온 선우 원장에게 지난 2004년 가을 무렵 찾아온 한 50대 환자는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50대의 그 환자는 병원비가 아까워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찢어진 얼굴 부위 상처를 스스로 꿰맸었다. 그에게 병원비는 마취도 없이 맨살을 꿰매는 고통보다 더 두려운 것이었다.
강남과 강북간 건강불평등 심화
우리 사회에 드리운 의료양극화의 그늘은 생각보다 짙다. 강남과 강북간 교육환경의 차이만큼 의료환경의 차이도 상당히 벌어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건강형평성학회가 지난 2000년부터 2004년까지 5년간 전국 234개 시·군·구의 사망등록자료를 토대로 실시한 ‘성연령 표준화 사망률’ 조사결과에 따르면 2000~2004년까지 5년 동안 인구 10만명당 성연령 표준화 사망자 수는 강북구가 2,334명, 강남구가 1,809명으로 약 23% 가량 격차가 벌어진다.
서초, 강남, 송파구 등 강남권은 2,000명대 안팎의 수준을 보인 반면 강북구를 비롯해 성북, 노원, 동대문구 등은 강북권은 평균 2,200명 이상의 비교적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조사 결과와 관련 울산의대 강영호 교수는 “만약 우리나라 시군구가 모두 서초구 수준의 사망률을 보였을 경우 지난 5년 동안 살릴 수 있었던 사망자수는 38만4,152명에 이를 것”이라며 “이는 2000~2004년간 우리나라 총 사망자수(123만9200명)의 31%에 해당하는 수치”라고 분석했다.
〈▲ 소득에 따른 미치료, 치료지연 비율〉
물론 이런 차이가 단순히 지역적 요인에 기인한 것은 아니다. 소득이나 학력수준과 같은 사회경제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 때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64세 서울시민 1만6,18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작성한 ‘만성질환 유병과 주관적 건강수준의 사회계층별 차이와 건강행태의 영향’이란 보고서가 이를 반증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교육수준과 소득수준, 직업계층별로 만성질환 유병률과 주관적 불건강인식률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대학 이상의 교육수준을 가진 인구의 만성질환 유병률은 남자 22.7%, 여자 24.6%에 불과했지만, 초등학교 이하에서는 남자 56.2%, 여자 68.9%로 남녀 각각 2.5배와 2.8배의 유병률 차이를 드러냈다. 대학 이상의 교육수준을 가진 인구의 주관적 불건강인식률은 남자 7.6%, 여자 11.5%였지만 초등학교 이하에서는 남자 32.5%, 여자 42.3%로 높은 유병수준을 보였다.
소득수준에 따른 만성질환 유병률도 크게 달랐다. 소득수준이 상위 20%에 속하는 가구 월소득 251만원 계층의 만성질환 유병률은 남자 26.8%, 여자 27.9%에 그친 반면 하위 20%에 속하는 월소득 100만원 이하 빈곤계층의 만성질환 유병률은 남자 35.1%, 여자 49.8%로 훨씬 더 높았다.
보고서는 “이같이 교육수준과 소득수준의 차이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사회계층에 따른 보건의료서비스와 건강증진서비스에 대한 구매력의 차이, 서비스 접근성의 차이, 지식과 건강관리 능력의 차이에 기인하는 것”으로 추측했다.
가난과 함께 질병도 ‘대물림’
의료양극화에 따른 건강불평등의 가장 큰 문제점은 세대를 이어 대물림된다는 것이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작성한 ‘아동 및 청소년의 건강수준 및 보건의식행태’라는 보고서를 보면 건강불평등이 자녀들에게 그대로 대물림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보고서는 복지부가 지난해 4월 6일부터 6월 21일까지 3개월간 전국의 아동 및 청소년 8,633명을 대상으로 이뤄진 ‘건강심층조사’를 바탕으로 작성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건강이 양호한 아동 및 청소년의 비율은 가구소득이 100만원 이하인 경우 69.5%에 불과했지만 101~200만원 76.6%, 201~300만원 79.4%, 301만원 이상 81.6% 등으로 가구소득이 높을수록 그 비율도 함께 증가했다.
월평균 가구소득에 따른 아동 및 청소년의 건강수준은 다양한 지표에서 차이를 보였다. 아동 및 청소년의 발달장애 유병률의 경우 소득 100만원 이하의 유병률은 2.2%로 301만원 이상인 가구의 1.0%보다 2.2배 더 높았다.
시력에도 차이가 난다. 지역 건강보험(6.3%)과 직장 건강보험(6.2%) 가입자의 시력문제 유병률은 거의 차이가 없었지만 의료급여 가입자 가구의 아동 및 청소년의 유병률(11.1%)과 비교하면 뚜렷한 차이를 드러냈다.
의료서비스가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미치료 혹은 치료지연을 경험한 비율도 극명한 대조를 보였다. 12~18세의 청소년 중 미치료 혹은 치료지연을 경험한 비율은 100만원 이하 12.6%, 101~200만원 7.4%, 201~300만원 5.6%, 301만원 이상 5.9% 등으로 조사됐다.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한 이유를 들여다보면 우리사회의 건강불평등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월소득 100만원 이하의 저소득층 아동 및 청소년의 경우 미치료 혹은 치료지연의 이유 가운데 ‘경제적인 문제(67.1%)’가 주요이었던 반면 300만원 이상 고소득층에서는 ‘경제적 문제(3.6%)’보다는 ‘학업(58.8%)’이 가장 큰 이유였다.
이같은 조사결과는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자식들의 건강마저 결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난의 대물림이 질병의 대물림으로 이어지고, 이런 악순환 구조가 고착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우려스러운 현상이다.
병원비 때문에 신용불량자로 전락
저소득층 가구의 상당수는 진료비로 인한 부채를 떠안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복지부가 지난해 발표한 ‘차상위계층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소비지출 가운데 보건의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9.3%로 전체가구 평균(4.4%)의 2배 이상인 것으로 파악됐다. 반면 사교육비는 3.3%로 전체가구 7.5%에 비해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결국 가난으로 인한 건강불평등과 교육불평등이 다시 ‘빈곤과 질병의 악순환’을 부르는 것이다.
부채가 있다고 응답한 차상위계층 가구 중에서 부채를 지게 된 이유를 보면 생활비 때문이라는 답변이 54.0%로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 의료비(11.9%), 교육비 (5.4%), 주거비(4.5%) 등의 순이었다. 가구주가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비율(52.3%)도 전체가구(23.7%)의 2배 이상에 달했다. 더욱 큰 문제는 차상위계층 가구에서 보험료와 의료비를 합한 지출액이 본인 소득의 10%를 넘었고, 73.2%는 의료비 지출이 가계에 부담된다고 응답했다는 점이다.
병원비 때문에 금융채무불이행자(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원이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2년 11월부터 2006년 7월까지 접수된 신용회복 지원 신청자 59만9,000명 중 금융채무를 이행하지 못한 이유가 병원비 때문이라는 응답자가 8.3%(10만2472건)에 달했다.
결국 이런 현상은 저소득층의 질병 미치료나 치료지연으로 이어져 병원을 악화시키고, 이로 인해 진료비 부담이 더욱 늘어나는 악순환으로 연결된다.
의료산업화 정책이 의료양극화 부추겨
참여정부는 공공의료 강화와 함께 의료산업화 정책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이에 따라 영리법인 병원 허용을 비롯해 민간의료보험 도입, 의료시장 개방 등의 다양한 정책을 검토, 추진해왔다.
참여정부가 추진해온 의료산업화 정책의 방향은 ▲의료기관에 대한 자본참여 활성화(영리병원 도입) ▲국민건강보험 급여체계의 개선,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 ▲의료시장 개방 대응 차원서 국내병원의 해외진출 지원 및 우수 외국병원의 국내 유치 ▲고령친화적인 요양서비스 확충 및 고령친화산업 육성 등을 핵심으로 꼽을 수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대통령 직속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를 통해 다양한 정책 방향을 검토 모색해 왔다. 그러나 이런 정책이 의료양극화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높다.
충북의대 이진석 교수는 “영리법인 병원이 일정한 규모를 넘어서는 수준으로 설립되거나, 그 영향이 전체 의료제도에 미칠 정도가 되면, 의료의 양극화 해소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며 “이는 의료비의 전반적인 인상으로 연결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외국의 사례를 보면 영리법인 병원의 의료비가 비영리법인 병원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서도 1990년대 말 민간 위탁된 지방공사의료원의 진료비 변화를 추적 관찰한 결과, 민간위탁 이후의 입원 1일당 의료비가 이전에 비해 2~3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진석 교수는 “의료비의 전반적 인상으로 인한 접근성 축소는 의료의 양적, 질적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며 “영리법인 병원 설립을 포함한 의료산업화정책이 의료의 양극화 해결방안 마련을 가로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민간의료보험 역시 의료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는 주요인으로 꼽힌다. 민간의료보험 도입 논의의 단초는 건강보험재정의 부족한 부분을 민간의료 부문에서 확충하자는 데 있다. 즉, 민간의료보험이라는 추가적인 재원을 활성화해 공공의료보장체계를 확대한다는 것이다.
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센터는 지난해 발간한 ‘의료의 산업화와 공공성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통해 “최근 들어 사회의 양극화가 더욱 심해지고 있는 형편이어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함에도, 오히려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는 이와는 정반대로 고소득층을 위주로 전개되는 정책이므로 이를 통해 확보되는 재원이 저소득층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분석했다.
보고서는 “민간의료보험의 도입 취지가 선택의 다양성을 높이는 것인데, 일부의 계층(주로 고소득층)에만 해당된다면 선택의 다양화라는 명분 아래 사회계층 간에 의료이용의 격차를 심화시켜 전체적으로는 비효율적인 구조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의료양극화, 대책은 없나
1980년, 영국에서 발표된 ‘블랙리포트’는 이 나라의 건강불평등 문제를 적나라하게 지적해 놓았다. 그러나 당시 보수당정부는 이를 금서로 규정하고 폐기처분했다. 보수당 정부는 ‘철의 여인’으로 불린 대처수상 이래 17년간 ‘건강불평등’의 존재 사실조자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1997년 토니 블레어 총리가 이끄는 노동당정부가 출범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블레어 정부는 출범 이후 곧바로 블랙리포트의 후속으로 ‘에치슨리포트’를 펴냈다. 이를 계기로 건강형평성의제를 노동당정책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에치슨리포트가 담아낸 핵심적인 3가지 의제는 ▲건강에 영향을 주는 모든 정책들은 그 정책들이 건강불평등에 가져올 영향을 평가해야 한다 ▲어린이가 있는 가정의 건강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소득불평등을 줄이고 가난한 가구들에 대한 생활수준을 향상시켜야 한다 등이다.
강원의대 예방의학교실 손미아 교수는 최근 열린 한국건강형평성학회 학술대회에서 “영국정책의 성과는 건강불평등에 타격을 가하기 위한 정책을 전 중앙부서의 핵심전략으로 세웠다는 것과 기존의 모든 체계를 활용해, 기존의 모든 사업을 건강불평등에 타격을 가하는 사업으로 방향전환 시켰다는 데 있다”고 평가했다. 손 교수는 “가장 핵심적인 점은 영국의 정책입안자들은 기존의 보건정책이 오히려 건강불평등을 심화시킬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감지하고 방향전환을 시도한 데 있다”고 강조했다.
영국의 상황에 빗대어 볼 때 우리나라에서 의료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첫걸음은 바로 건강불평등에 대한 위기감을 인식하는 것이다. 단 의료양극화 문제를 보건의료 분야에만 국한시켜 바라볼 때 문제 해결이 요원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부산의대 예방의학교실 윤태호 교수는 “우리사회는 아직도 건강이라는 개념을 보건의료서비스의 개념과 동일시하는 등 인식수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건강불평등을 보건의료분야의 문제로만 접근하게 되면 그 해결이 요원하며, 전 사회적인 노력을 통해 해결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 사회가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2006년 대한민국 의료 ‘극과 극’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에 위치한 시립동부병원. 200병상 규모의 이 병원은 노숙자와 행려병자, 의료보호 환자 등이 전체 환자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지난 12일 오후, 기자가 이 병원을 찾은 날에는 우연찮게도 전산시스템 장애가 발생해 외래진료가 거의 마비된 상태였다. 2002년 신축 건물로 옮겨와 내부시설과 외관은 여느 종합병원 못지않게 깔끔하지만 병원 내부는 어쩐지 스산한 느낌이었다.
“이곳에 오는 환자는 노숙자나 행려자 등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폐결핵 환자도 꽤 많은 편입니다.”
이 병원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는 이현주 씨의 말이다. 이 씨는 “2~3년 전부터 환자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며 “독거노인이나 장애인, 만성질환자가 전체 환자의 80%를 넘는다”고 말했다.
병원을 찾는 환자들의 사정이 이렇다보니 의료진도 치료에 상당히 애를 먹는다. 특히 알코올중독 환자들의 경우 입원해서도 술을 찾거나, 병실에서 흡연을 하다 강제퇴원 조치를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 씨는 “환자들의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다 보니 정신적으로 희망이 없다. 미래에 대한 계획을 갖기도 힘들고, 이 때문에 스스로 좌절하다보니 치료에 대한 의지도 그다지 높지 않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곳에서는 웬만한 치료가 거의 무료다. 다만 입원환자의 경우 하루 세끼 식사에 2,000~3,000원 정도의 본인부담금을 내야 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부담스러워하는 환자가 적지 않다.
이 씨는 “입원환자들 가운데 식대를 내기 힘들어 밤중에 몰래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병원을 빠져나가는 이들도 있다”며 “때로는 빚 때문에 채무자들이 병원까지 찾아와 독촉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수백만원대의 건강검진 서비스가 호황을 누리고 있다. 서울 강남에서도 교통의 요지에 위치한 서울대병원 강남건진센터. 지난 2003년 10월 최첨단 검사장비와 호텔 수준의 최고급 서비스로 무장한 채 화려하게 개원한 강남건진센터는 지난 10월부터 연간 회비 1,000만원인 건강회원권 제도(파트너스 프리미어 CEO 프로그램)를 도입했다.
강남센터가 도입한 이 검진 프로그램은 연회비만 1,000만원으로, 기업의 CEO나 임원 등을 대상으로 한 최고급 건강회원권 제도다. 강남센터는 이 프로그램 운영을 위해 상임주치의 6명, 간호사, 24시간 콜센터 운영인력 등 10여명의 인력을 투입해 회원들의 건강관리를 전담토록 했다. 지난 10월부터 운영에 들어간 이래 기업 임원과 배우자 등이 속속 회원으로 가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남건진센터는 이와 함께 숙박 건강진단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이 프로그램은 지방에서 올라온 검진자를 위해 서울에 위치한 리츠칼튼, 신라, 하얏트 등 유명호텔과 연계해 숙박 서비스를 제공한다.
신촌에 위치한 연세의료원 세브란스병원의 ‘200병동’. 여기에는 하루 병실료만 170여만원에 이르는 45평형 대형 특실이 운영된다. 특급호텔 수준의 인테리어와 조리실, DVD 오디오 시설, 개인 PC, 심지어 회의실과 거실까지 구비돼 있다.
김상기 기자
김상기 기자 bus19@docdocdoc.co.kr
사진·김선경 기자 photo@docdocdoc.co.
댓글 (0)
댓글 작성
댓글을 불러오는 중...